지난 리눅스 10여년을 돌아 보며.....

리눅스가 국내에 보급된 지 벌써10여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동안 많은 리눅스 회사들이 생겨 났으며 또 그렇게 많은 회사들이 사라졌습니다. 현재 리눅스 시장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 하고 있다고 봅니다. 저는 91년도 처음 사업을 Xenix 기반에 Cobol 프로그램을 통하여 CS 환경 구축 소프트웨어 회사를 경영을 한바 있습니다. 그러다가, 94년 슬랙워를 당시 386DX 머신에 설치를 한것이 인연이 리눅스를 처음 접한 인연이었습니다. 그후, 2000년도 리눅스원에 입사를 하여 리눅스 기술 지원 업무를 거쳐, 엔티씨 코리아(현 엔티씨 큐브) 리눅스 전문 기술 지원 회사를 거쳐, 그리고, 현재는 하드웨어 회사에서 리눅스를 기반으로 하여 시스템 컨설턴트로 일을 해 오고 있습니다. 여기에 쓴 글은 과거 리눅스 보급을 위하여 애를 써온 1세대를 비방하기 위한 글이 아닙니다. 이 글은 지난 94년을 거쳐 현재까지 리눅스를 써오고 있는 일반 유저 한사람으로, 그리고, 리눅스를 가지고 사업을 하였던 한 사람으로 지난 10여년을 돌아 보며 지금 새로이 도래를 하고 있는 4기를 보며 쓴 자서전적 사견일뿐임을 글머리에서 밝혀 둡니다.


[size=150:gd070j5t]<1기 시장 창세기>[/size:gd070j5t]

국내 리눅스 시장은 3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기 시장은 1995년-2001년으로 이 당시 특징으로는 저가격 고성능을 목표로 하였으며 하드웨어 판매가 주된 매출원이었다. 특히, Intel, AMD의 발전으로 기존 대형 유닉스 머신의 전환이 이루어 진것이다. 이에, 유저들은 선택의 폭이 x86 계열의 운영체제인 리눅스와 윈도우즈를 자유롭게 선택을 할 수 있었다. 특히, 리눅스는 당시 IT붐이라는 시장의 특수성에 마치 황금알을 낳는 아이템으로 많은 많은 투자자(엔젤이라고 불리웠다.)들이 소히 말하는 '묻지마 투자’를 하였던 시절이었다. 리눅스 업체가 생겨났으며 많은 국내배포 판들이 만들어진 시기가 바로 이 시기였으며 리눅스에 관련된 서적들의 범람, 커뮤니티의 활성이 되었던 시기 역시 바로 이 시기였다.
이처럼 리눅스 1세대라 일커는 리눅스 1기는 국내 시장에 리눅스를 알리는데 큰 디딤돌 역할을 하였으나 또한 크나큰 과오를 범하였다. 바로 리눅스의 본질을 왜곡하여 보급을 하였던 것이다.
리눅스의 본질이라 함은 무엇일까? 이는 "자유"의 정신일것이다. 허나, 당시 "자유=공짜"라는 인식이 만연하던 시기였으며 이러한 착오를 바로 잡지 못하고 올바른 사업 모델로 만들지 못하였다는 지적을 피하지를 못한다. 리눅스는 free라는 기본 정신에 탄생이 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발전이 되는데 이 free라는 리눅스 정신을 바로 알리지 못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리눅스 업체라며 자사의 회사명에 리눅스를 쓰는 업체들이 리눅스 판매, 지원비를 하드웨어에 포함을 하여 판매를 시작하여 결국 리눅스 모든 업체들이 하드웨어 판매에 의존 할수 밖에 없는 시장을 만들었던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필자는 1기, 즉 1세대의 노고, 리눅스의 불모지에 과감히 도전하였으며 보급 개척을 한 그들의 프런티어 정신에 경외심을 표한다. 허나 나와 같은 1세댜들의 과오는 국내 리눅스 2기 시장에 커다란 영향을 주게 된다.

[size=150:gd070j5t]<2기 암흑기>[/size:gd070j5t]

국내 리눅스 2기는 2001년-2004년 초로 볼 수 있는데 이는 국내 IT시장의 몰락과 함께 한다. 이는 당연한 곁과 인지도 모른다. 앞서 말하였듯이 하드웨어 판매에 의존 하였으므로 주 수입이었던 닷컴 기업의 몰락으로 각 사마다 재고장비가 넘쳐났으며, 미수금과 이로 인한 연쇄부도가 발생했었던 것이다. 이를 두고 대란이 났다고 하는가? 그 수많던 국내 리눅스 업체들이 일제히 문을 닫았으며 수많은 리눅스 엔지니어들이 길거리로 내앉았으며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던 리눅스 서적, 커뮤니티들이 중단이 되었던 시기였다. 국내 리눅스 시장은 암흑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아이너리하게도 리눅스는 발전을 거듭하게 되어 Enterprise 시장을 목표로 한 커널2.4를 발표하게 된다. 당연히 리눅스 대상은 일반. COM이 아닌 기업 대상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허나 이미 국내 리눅스 기업은 쇠태 하였으며 리눅스 엔지니어는 배고픔을 못 이겨 전직을 한 후였다. 이로써 엔지니어 품귀가 시작이 되었다. 특히 이 2기 시장의 특징은 기업이 대상이라는 특징과 하드웨어의 급격한 발전과 가격하락이 맞물려 더 이상 성능중심이 아닌 안정성에 비중을 두게 된 것이 바로 2기 시장의 특징이었다.(low cost high stability ) 이를 하여서는 반드시 리눅스 전문엔지니어가 필요하나 이미 전직, 업종전환으로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이 시기 괄목할 중요 흐름은 RedHat사에서 기존 제품인 7.3 8 9에 대한 정책의 변화이다. RedHat은 공개버전인 RHCL과 상용버전인 RHEL(RedHat Enterprise)버전인 두 개의 라인을 가지게 되며 2004년 4월20일 부로 공개버전인 RedHat 9에 대한 패치서비스를 중단으로 공식적으로 공개버전을 중단을 하였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Fedora는 기존 RedHat 9에 이은 제품이 아닌 새로이 Fedora 프로젝트 그룹에 의하여 발표가 되며 RedHat은 단순 스폰서일 뿐이다. RedHat은 자사의 상용 제품인 RHEL의 개발에 Fedora를 통하여 전세계를 대상으로 BMT를 한 결과를 적용 하고 있다. RedHat은 상용버전인 RHEL 2.1 RHEL3을 출시하면서 subscription이란 명목아래 기존 RedHat 8버전 9버전의 수십 배가 되는 가격으로 판매를 하게 된다. subscription은 당시 국내에서 받아들여지는 리눅스는 "공짜"라는 인식과 충돌을 하게 된다. 여기서 왜 RedHat은 라이센스란 명목이 아닌 subscription 명목을 사용하였는지 집어볼 필요가 있다. 이는 리눅스가 free이며 GNU GPL을 따르므로 상용 라이센스란 없다는 것이다. 리눅스 배포판은 리눅스인 kernal과 각종 GNU GPL인 application의 집합체인 종합선물세트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RedHat은 1년간 패치 및 기술지원이란 상품 바로 subscription 을 만들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기술지원, 서비스의 상품화 시장이 열리게 된 것이다. 따라서 subscription 상품을 처음 등장하였을 당시 국내시장은 지금까지 무료로 인식이 되어왔던 리눅스가 여타 상용 OS에 못지 않는 가격에 적잖은 충격과 반발을 가져옴은 당연한 일이었다. 국내 리눅스 2기 시장은 암흑기이면서 한편으로는 국외의 이러한 새로운 사업모델의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size=150:gd070j5t]<3기 변화의 시기>[/size:gd070j5t]

국내 리눅스 3기는 2004년 중반 부터인데 이 시기를 변화의 시기라 말하고 싶다. 리눅스는 1기 2기를 거치면서 하나의 사업모델인 서비스 상품을 완성하게 되었다.
이를 뒤 받침은 하드웨어의 놀라운 발전과 리눅스 커널의 고성능화가 있었으며 시장의 변화 요구(UNIX TCO 절감)에 적합 하였기 때문이다. 3기 시장은 지금까지 소규모 자본으로 움직였던 것에 반해 대규모 자본의 유입이 시작 되었다. 이전까지의 리눅스는 저가하드웨어에 설치되었으며 이를 위한 운영체제로 여겨졌으나 앞서 언급을 하였듯이 커널의 발전으로 상용 운영체제에 못지 않음이 각종 테스트 리포트, 논문으로 발표가 됨에 따라 저가하드웨어에서 Enterprise 급으로 그 대상이 넓혀지게 된다. 이로서 대규모 자본을 가진 대기업이 시장에 뛰어들게 된 것이다. CRAY DELL HP IBM SGI SUN 등 과거 한 시대를 주도를 하였던 기업이 리눅스를 위하여 새로운 사업부서를 만들었으며 심지어 자신의 OS,CPU 틀 포기를 하고 리눅스를 지원하고 있다. 국내 시장 역시 SAMSUNG LG POSDATA 와 같은 대기업도 별도의 팀을 만들었으며 리눅스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3기의 특징 중 하나는 지금까지의 리눅스를 개발 주도를 한두 개의 회사가 주도하였던 것과 달리 국가와 국가간에 협력, 국가의 독립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데 있다. 한중일이 공동으로 개발을 하는 아시아 리눅스, 국가 OS 라는 목표 아래 8개 업체와 ETRI가 공동 개발중인 부요가 바로 이러하다. 아울러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전문 리눅스 컨설턴트의 등단이다

[size=150:gd070j5t]<4S>[/size:gd070j5t]

2004년 당시 필자는 3기 시장과 향후 미래를 위한 목표를 4S로 보고 있다. 4S란 1. STANDARD 2. STABILITY 3. SECURITY 4. SERVICE로 즉 현재 리눅스 시장과 앞으로의 시장을 이끌어나갈 목표이다. STANDARD란 OS의 표준화, 설치의 표준화, 기술지원의 표준화, 문서의 표준화를 말한다 실제 필드에서는 각종 리눅스가 혼재 하며 이미 패치 지원 등이 끝난 RedHat 7.x 8 9 심지어는 6.x가 설치 운영되고 있으며 같은 목적으로 같은 리눅스 버전을 설치 하였다 하더라도 저마다 서로 다르게 설치가 되어있다. 이는 관리 비용의 증가를 가져오며, 관리의 실수를 불러 온다. 더욱이 성능 저하 및 각종 오류의 원인이 된다. 예를 들면, RHEL 3을 전체설치를 하게 되면 약 1,124개의 RPM이 설치가 되는데 WEB서버로 사용하는 데는 불과 백여 개의 RPM만이 필요하다. 이렇듯 OS가 표준화가 안되어 있으며, 설치가 표준화가 안되어 있는데 초기설치, 운영, 수정 등의 문서의 표준화가 있을 리 만무하다. 이는 고품질 기술 지원을 위한 바탕이 없으니 기술지원에 대한 표준화 되어 있지 만무하다. 따라서, 그 시스템은 엔지니어의 전적인 실력에 따라 시스템의 품질이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STANDARD가 이루어지면 당연히 STABILITY가 이루어진다 즉 자신의 업무에 필요한 패키지만을 선택 설치를 하게 되면 불필요로 한 패키지와의 충돌을 피할 수 있으며 기술지원 방법 초기설치, 운영,수정 등의 문서가 표준화가 되면 앞서 지적한 엔지니어의 실력에 좌우되던 품질의 문제점을 해소하여 어느 엔지니어나 같은 품질의 서비스를 하게 되니, STABILITY가 얻어 지는 것이다. 이 STABILITY가 이루어지면 자연스럽게 SECURITY가 얻어진다. 꼭 필요한 패키지만으로 구성된 운영체제는 해당 패키지만 보안에 신경을 써도 되니 관리자 입장에서는 일이 대폭 줄어 들며, 설치, 운영 모든 서비스가 표준화가 되니 STABILITY가 높아지며 덩달아 SECURITY가 높아지게 됨은 당연하다. STANDARD, STABILITY, SECURITY 가 이루어지면 자연스럽게 우리는 최종적으로 SERVICE 의 고품질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 4S가 현재 그리고 향후 우리가 이루어야 될 목표인 것이다.

[size=150:gd070j5t]<4S의 바탕>[/size:gd070j5t]

4S를 이루기 위하여서는 리눅스 전문 엔지니어와 컨설턴트가 필요로 한다. 2004년 필자의 회사는 전문 리눅스 기술 지원과 컨설팅을 하는 회사이다. 매번 새로운 인력을 뽑을 때마다 지원자는 많으나 그 대다수가 operator식 교육을 받은 인력으로 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경영 입장에서는 operator 인력을 위하여 년 수천 만원씩 투자를 할 필요가 없이 단지 좋은 책 5권을 사는 것이 나을수도있다. 이런 현상의 근간이 된 것은 지난 1기 리눅스 1세대라 불리는 엔지니어들의 전직으로 따른 공급 부족과 현재 교육 체제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학교 및 학원 등에서 하는 교육은 단순 command 나열식 교육이 대다수이다. 심지어, 현재 나오는 서적을 보라, 현재 학교에서 쓰이는 교재를 보라. 대다수 2000년 초반에 쓰여진 구식 내용들로 페이지를 채우고 있다. 버전이 바뀔 때마다 단지 사족만 바꾸고, command만 추가를 하고 있는 셈이다. 초창기 리눅스가 보급 되기 전에는 이런 교육만 하여도 충분 하였다.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는 계속하여 Open이 되며, 그 속도는 증가하고 있다. 과거 리눅스 고급기술은 이미 지금에 와서는 더 이상 고급 기술이 아니다. 현재는 우리는 3기 시장에 접어 들었으며 이 시기는 2기 시장에서 그 수요가 발생하기 시작한 전문 리눅스 엔지니어가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며, 아울러, 이를 바탕으로 전문 컨설턴트의 역할이 필요하다. 현재 기업이 필요로 하는 것은 과거 명령어 나열식 교육을 받은 Operator가 아니라 Engineer 가 필요하다. 이를 위하여서는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

[size=150:gd070j5t]<4S와 교육>[/size:gd070j5t]

모처럼 리눅스가 다시 붐을 이루려고 한다. 이는 기업의 도입의 수요도 증가 하였으며 대기업 자본의 유입, 그리고, 국가의 움직임을 이끌고 있다. 모처럼 맞이한 리눅스의 붐을 위하여 기본이 되는 1. 실무 유주 교육 2. 장애 처리 중심 3, 시스템 설계 4. 인격 교육 이 4가지가 교육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교육이 아닌 새로운 교육, 하나의 진정한 엔지니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실무 유주의 교육과 이를 바탕으로 설계능력까지 할 수 있는 엔지니어의 육성을 하여야 한다. 또한, 공인 인증 제도를 재 정비를 하여야 한다. 현재 존재하는 RHCL, LPIC, 리눅스 마스터 와 같은 인증이 아닌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과 컨설팅 인증을 말한다. 이러한 인증 기관의 중심은 국가가 아닌 기업이 되어야 한다. 이는 사업모델로 성숙되기 위해서는 기업이 그 기초가 되어 이루어져야 하며 국가는 공정성과 신뢰도를 위하여 중재역할을 하면 된다. 만일 국가가 이 인증을 맡게 되면 기업이 외면 하게 되며 사업 모델로 성숙되지 못할 위험성이 다분하다. 이미 우리는 국가가 주도로 인증제도를 시행 하였으나 기업들이 이를 외면하여 결국 유명무실하게 된 인증이 많음을 많이 보아 오지 않았는가?

[size=150:gd070j5t]<세계로의 디딤돌>[/size:gd070j5t]

비롯 국내 리눅스 시장은 쓰디쓴 고배를 마셨으며, 새로운 가능성을 국내가 아닌 해외로부터 배웠었다. 리눅스 단독 상품은 실패를 하였으나 서비스 상품은 우리에게 충분한 승산이 있다. 지난 10여년동안 1기 2기를 거치며 쌓여진 Know-How, Know-Where가 바로 그렇다. 10여년 동안 쌓여온 그 힘을 디딤돌 삼아 우리는 세계로 나갈 수 있다. 리눅스는 하나이다. 세계 어느 곳에 가든지 그곳에 사용하는 리눅스의 기본은 같다. 리눅스는 전 세계가 같이 공유 할수 있는 free라는 고귀한 정신 아래 지금까지 발전을 하였으며, 앞으로도 발전을 할 것이며 그 수요는 증가를 할 것이며, 이에 따라 서비스 시장은 커질 것이다. 이제 우리는 리눅스 서비스 시장을 단지 국내 리눅스 시장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세계 시장으로 확대를 하여야 한다. 세계로 나갈 수 있는 시장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필자는 현재의 리눅스의 마지막은 단지 지역 운영 체제가 아닌 세계 운영체제가 될 수 있는 믿음이 있다. 그리고, 그 시장은 세계라고 결론한다.


[size=150:gd070j5t]에필로그 <4기 - 다시 도래한 Fun 의 시기를 맞이하며… >[/size:gd070j5t]

이제 3기를 거쳐 새로운 시기인 4기가 도래 하였다고 저는 조심스럽게 화두를 띄어 봅니다.
4기의 시대는 바로 "즐거움과 나눔"의 시기가 아닐까 생각 합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발전하는 하드웨어 함께 리눅스도 많은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강력한 CPU와 GPU의 헤텍을 입어 성능과 유저 인터페이스는 더욱더 화려해졌으며, Windows 를 능가를 하고 있습니다.
더욱더 기회인것은 지난 1기 시절과 같은 "즐거움"이 다시금 살아나고 있습니다.
리눅스원 시절, 퇴근 후 교육 센타에 올라가 밤늦게 리눅스 강의를 하면서, 프로젝트를 함께 하였던 학생들…
엔티씨 코리아(현재 엔티씨 큐브) 추운 겨울날 전기 난로 하나에, 박스를 깔고 저희 직원들 부등켜 안고 자도 즐거웠었 시절…
한국형 리눅스를 만들고자 ETRI 와 부요 리눅스를 할 때 주변 같은 리눅서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할때도 즐겁기만 하였던것은 리눅스에 대한 열정과 사랑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최근 전 이런 열정이 다시금 꿈틀거림을 이곳 우분투 사이트를 통하여 보았습니다.

"즐거움과 나눔"
즐거움… 그리고 거져 받았으니, 거져 나누어라,

흥분이 됩니다. 그리고, 전율을 느낌니다… 저도 그 열정에 다시금 미쳐 볼려고 합니다.

2기 암흑기라… 임베디드 리눅스쪽은 이때가 제일 활발하던 시기였던거 같은데 아닌가요? =.=
이때 여기저기 디바이스 드라이버 관련 학원/강좌 등등 많았던…
주변 SW/HW 개발자들은 이쪽으로 많이 몰렸던 것 같은데…
SW지향 HW개발자 / HW지향 SW개발자들은 살아남고 나머지는 다 도퇴된 듯한 느낌이…

[quote="haze11":7xw879f0]2기 암흑기라… 임베디드 리눅스쪽은 이때가 제일 활발하던 시기였던거 같은데 아닌가요? =.=
이때 여기저기 디바이스 드라이버 관련 학원/강좌 등등 많았던…
주변 SW/HW 개발자들은 이쪽으로 많이 몰렸던 것 같은데…
SW지향 HW개발자 / HW지향 SW개발자들은 살아남고 나머지는 다 도퇴된 듯한 느낌이…[/quote:7xw879f0]

네 맞습니다… 서버단에서의 리눅스가 새로운 발전 방향으로 발전이 된것입니다.
제가 쓴 글은 일반 리눅스 입장에서 쓴글이었습니다.
이해 부탁 드립니다.

음 좋은 글입니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고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

리눅스 시장으로 보면 그럴수 있지만
2,000년대 초가 왜 암흑기인지
[b:3d1y1obk]와우, 미지등 국내 배포판이 나오던 시기[/b:3d1y1obk]인데 그부분은 …
알짜 이 후 한때 와우 팬이었어요
서버용 설정들이 다 한글화 되서 놀랬죠!!! 우와 누가 이걸 다 했지 하고 … :?
언급이 없어 조금 아쉽습니다. 근데 [b:3d1y1obk]이게 90년대 말로 보아야 하는군요 !!![/b:3d1y1obk]
아 그리고 적수네 ( lunux.sarang.net ) 1원팁은 아주 재미났습니다.

여튼 새로운 사실과 생각을 해보게 해주는 글 입니다.

[quote="강분도":36jpum48]음 좋은 글입니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고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

리눅스 시장으로 보면 그럴수 있지만
2,000년대 초가 왜 암흑기인지
[b:36jpum48]와우, 미지등 국내 배포판이 나오던 시기[/b:36jpum48]인데 그부분은 …
알짜 이 후 한때 와우 팬이었어요
서버용 설정들이 다 한글화 되서 놀랬죠!!! 우와 누가 이걸 다 했지 하고 … :?
언급이 없어 조금 아쉽습니다. 근데 [b:36jpum48]이게 90년대 말로 보아야 하는군요 !!![/b:36jpum48]
아 그리고 적수네 ( lunux.sarang.net ) 1원팁은 아주 재미났습니다.

여튼 새로운 사실과 생각을 해보게 해주는 글 입니다.[/quote:36jpum48]

감사합니다…^^
2001년도를 암혹기의 시작으로 보는 관점은 조금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이 부분은 많은 리눅서들에게도 지적을 받았고요…

강분도님이 말씀 하신대로 2001년도에 많은 배포판이 나오게 되었죠… 언급 하신 와우 리눅스의 경우 빠른 업데이트와 심지어 알파 서버에서 돌수 있도록 알파 리눅스까지 패키징이 되었던 시절이었습니다.
허나, 일반 리눅스 서버 사업에 대한 시점으로 바라보니, 2001년을 부득이 암혹기의 시작으로 넣게 된 것입니다. 비공인 통계 수치로 보면, 2001년도 말 부터 2004년 초까지 국내 리눅스 업체들의 94%이상이 사업을 그만 두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6%가 그나마 명백을 위지 하거나, 리눅스 서버에서 새로운 사업 모델인 "임베디드 분야"로의 전환을 하게 되었습니다.(앞서 지적을 주신 "haze11" 처럼 이 시기 리눅스는 새로운 시장인 "임베디드"로 넘어 가게 되었습니다. )즉, 새로운 사업 모델의 태동기라고도 볼수 있을 것입니다.

강분도님이 말씀 하신대로, 조만간, 앞서 올린 글 "컴퓨터 파노라마" 처럼 "국내 리눅스 파노라마"를 작성을 해 볼까 합니다.

그 글에는 국내 리눅스의 장을 밝히셨던 여러 공헌자들에 대한 숨은 이야기들을 발굴, 정리를 해 볼까 합니다.

제가 처음 리눅스를 알게된게 94년 95년…
리눅스를 실무에 적용하려던 시기가… 1차전직 후 97년 98년도…

99년들어와서 2차 전직…=_=;;;;…리눅스쪽을 접었던…
06년에 3차 전직…=ㅇ=;;;;;…귀농…

레벨이 높아지면 아이템도 높아저야하는데…
레벨만 높아젔을뿐 컨트롤이나 여타 아이템이 딸려서…쩝…(짱개들 데리고 앵벌이점 할껄…후회됩니다…)

여튼 암흑기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단지 게임이라는 것으로 보자면…
2D를 벗어나 3D로의 본격 진입이 시작된 시기이고 한국내 온라인게임의 중흥기였던 때라…
게임이 되지 안는 리눅스가 상대적으로 관심밖으로 내 몰렸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기존 프로그래밍이 바이너리 컴파일에서 웹으로 이동이 많았던 시기로 기억됩니다.
최근에 욕 마이 먹고 퇴출되어 가고 있는 엑티브엑스로 말이죠…ㅋㅋㅋ

대충 종합적으로 보자면 리눅스입장에서는 당시 업체들은 막차를 타고 있었던듯 보입니다.
일반인들의 이목에서 벗어나는 시기에 많은 배포판이 나온것은 사실입니다.

한국은 작년 초쯤부터 다시 리눅스로 회귀하는 분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음을 느껴옵니다만…
해외는 아마도 제가 3차전직을 하였던 06년도부터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은듯합니다.

한국은 쫌 많이 억수로 늦었다고 볼수 있겠지요!!
^^ 늘 컴터에 붙어 살았지만…커널 2.4버전의 소식과 더불어 2.6의 소식도 크게 와닫지 안았었던듯합니다.

리눅스 사용자 인구 추이를 보자면 확실히 2000년도에 접어들면서 세계적인 리눅스 인구의 증가폭이
팍 줄어드는것을 불수 있고 2006년도부터 다시 상승세로 돌아서고 있는것으로 보자면…

한국만의 역사가 아닌 세계적으로도 어느정도 같은 시기를 격은듯합니다.

지금을 보자면 넷북의 효과와 비스타의 실패로 인한 겸사이득을 리눅스와 맥오에스가 보고 있는것이겠지요…

윈도우즈7의 효과가 어느정도 할지는 사실 잘 모르겠으나…비스타의 길을 갈수도…
그리고 거대기업들의 리눅스지원이 끈기지 안는 이상은…
현상태가 지속되리라 봅니다 ㅋㅋ

과거 인류의 역사를 보자면 자유와의 투쟁이였다고봐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OS 역시도 독점과 free와의 싸움이 아니겠나 싶습니다.

대중음악과 클레식의 차이는…대중과 함께하느냐 아니냐의 차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이건 기억합시다 과거에는 클레식이 대중음악이였다는 사실을…
지금당장은 단순 퍼포먼스에 불과한 실험적 음악들이…훗날 대중음악이 될수도 있는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대중음악이지만 훗날 그저그런 과거의 음악이 될수도 있습니다.

미래를 예견할순 없으나…좋은 세상이 올것이라는것 정도는 알수 있습니다 ㅋㅋ

시대적으로는 저도 거의 같은 기간동안 리눅스를 사용해 왔었네요…
가끔 리눅스 관련 업체 에서도 일을 했었지만…

국내 리눅스 발전등에 기여하거나 주도적인 역활을 해보질 못했고…
맨날 뒤에서 궁시렁 궁시렁만 거렸네요…

다만 직장다니면서 리눅스를 써도 상관없는 곳만 다니다 보니… 그냥 데스크 탑으로 리눅스를 사용하였고… 십년이 넘는 기간동안 난 리눅스를 좋아 한다 하고 말하고 다녔네요…

또 다시 십여년 뒤에는 어떻게 변해 있을런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