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집중도 안되고 짧은 잡담이랄까요..

안녕하세요.
이곳에 가입하고 질문 한번 올렸던게 전부인데 자유게시판에 글을 처음 올려보네요.

일하다가 집중도 안되고 심심한 나머지 이런저런 글을 읽으며 무료함을 달래고 있습니다…
엄연히…"근무시간"에 말이죠…(-ㅅ-;;)a긁적긁적…
실은 초보적인 프로그래밍 실력에 일도 제대로 못하고 공부해가면서 하는데… 기존 코드가 이해가 안되고, 한번 막히기 시작하면 왜이리 맥이 풀릴까요…;; ‘이건 뭐야?!’ 하며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결국 삼천포로…
이것저것 책상에 펼쳐져 있는데 눈에 들어오질 않습니다…ㅠㅅㅠ
어제는 make하다가 자꾸 소스파일에서 없애놓은 멤버함수가 에러로 뜨길래, 기분좋게 make distclean 치고는 타겟 지정을 잘못해서("-"을 안붙였다죠… ) 일에 쓰이는 프로그램 전부를 깔끔히 날려주었죠…털썩…세상 뭐있나요…;;

스위스로 출장나온지 이제 한달이 넘었고… 곧있으면 한국으로 돌아가는데… 해놓은게 없으니…
돌아가면 지도교수님께 죽을 일만 남았네요…하아…ㅠㅠ

지도 교수님게 make distclean의 미학(자학?)에 대해서 잘 설명해 보십시오.

그럼 명복, 아니 행운을 빌겠사옵니다. :D

가서 한꺼번에 맞아 죽는것 보다는 지금부터 차근차근 보고를 하시면서
조금씩 맞다보면 내성이 생겨서 별 충격이 없을까 합니다.
= 삼가 건승하시기를 바라옵니다.

[quote="logicai":5gb3pksr]가서 한꺼번에 맞아 죽는것 보다는 지금부터 차근차근 보고를 하시면서
조금씩 맞다보면 내성이 생겨서 별 충격이 없을까 합니다.
= 삼가 건승하시기를 바라옵니다.[/quote:5gb3pksr]
=> 맷집을 기른다? :shock:

이 글을 보다 보니 왠지 예전에 봤던 글이 생각이나서 올려봅니다.

[b:1ibix8ls][size=150:1ibix8ls]코딩하던 노인[/size:1ibix8ls][/b:1ibix8ls]

[b:1ibix8ls]원작 : 尹五榮의 ‘방망이 깎던 노인’[/b:1ibix8ls]

벌써 3-4년 전이다. 내가 갓 취업 한 지 얼마 안 돼서 구로공단에서 일 하던 때다.
이른 아침. 찜질방에서 잔 뒤 출근 하러가는 길에, 게임한판 하고 가기위해 근처 PC방으로 향했다.

리듬안마 맞은편 PC방에 구석에 앉아 비쥬얼 스튜디오를 들여다 보는 노인이 있었다.
밤새 잡히지 않는 버그에 대한 조언도 구할겸 소스를 봐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줄 수 없습니까?”했더니,

“소스 하나 고쳐주는걸 가지고 에누리 하겠소? 비싸거든 자네가 고쳐.”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더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버그나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들여다 보고 잇었다. 처음에는 대충 보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스크롤해 보고 저리 스크롤 해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고친것 같은데, 자꾸만 더 고치고 있었다.
인제 잘 돌아는 가는것 같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사실 출근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고치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맡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고친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출근 시간 늦었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 고치우. 난 소스 지우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출근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고쳐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지저분해지고 늦어진다니까. 코드란 제대로 짜야지, 짜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고치던 것을 숫제 새로 처음부터 태연스럽게 곰방대에 담배를 담아 피우며 짜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단축기를 눌러 이렇게 저렇게 컴파일 하고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코드다.

출근 놓치고 지각 해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코딩을 해 가지고는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 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리듬안마 지붕 추녀를 바라보고 섰다. 그때, 그 바라보고 섰는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이고,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회사에 와서 소스를 내놨더니, 팀장은 완벽하게 코딩했다고 야단이다. 퇴사한 박대리(주1)가 코딩한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팀장의 설명을 들어 보니, 코드가 너무 지저분하면 버그가 생기기 쉽고 같은 코드라도 성능이 떨어지며, 변수 이름이 제멋대로이면 다른 사람에게 코드를 넘겨주어도 쪽팔리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소스는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開作(개작-Open Source)은 혹 컴파일이 안되면 자료형을 바꿔 컴파일 하고 파일이 누락되어 있으면 구글에서 찾아 넣고 컴파일 하면 좀체로 에러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소스는 에러가 한번 튀어나오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오래된 開作(개작-Open Source)코드를 갈아엎을때, 깔끔한 최신 배포판으로 잘 받아서 갈아치우기만 해도 컴파일이 되었다. 이것을 최신 리빌드라고 한다. 이렇게 하기를 세 번 한 뒤에 비로소 배포한다. 이것을 '최신 버전을 릴리즈 한다’라고 한다. 물론 날짜가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소스코드를 그냥 통채로 복사해서 붙여넣는다. 금방 붙는다. 그러나 왠지 찝찝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것을 며칠씩 걸려 가며 리빌드 할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外注(외주)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복사한 코드(Copy&Paste Code)는 얼마, 직접 짠 코드는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구디구빌(NDNB:Nine-Debug, Nine-Build)한 것은 세 배 이상 비싸다. '구디구빌(NDNB)'란 아홉 번 디버깅하고 아홉번 리빌드 한 것이다. 눈으로 봐서는 다섯 번을 했는지 열 번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단지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클레임 걸지도 않는데 아홉 번씩 디버깅 하고 리빌드 할 이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코딩은 코딩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코드를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코드를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어 냈다.

이 소스코드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코더를 해 먹는담.”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젊은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코드가 탄생할 수 있담.”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삼겹살에 소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월요일에 퇴근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리듬안마의 지붕 추녀를 바라다보았다. 푸른 창공에 날아갈 듯한 추녀 끝으로 섹시한 포스터가 걸려있었다. 아, 그때 그 노인이 저 포스터를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코딩 하다가 우연히 추녀 끝의 포스터를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採菊東籬不(채국동리불)다가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 도연명의 시구가 새어 나왔다.

오늘, 회사에 출근했더니 후배가 MFC(Microsoft Foundation Classes)와 리소스 편집기로 코딩을 하고 있었다. 전에 커맨드라인과 배치파일로 힘겹게 코딩하고 컴파일 하던 생각이 난다. 도스를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까만 화면은 볼 수도 없다. ‘왓콤씨’ 이니, '어셈블러’이니 애수를 자아내던 그 개발툴들도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 문득 3-4년 전 코딩 하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quote="ace4ker":2nba7uva]코딩하던 노인

원작 : 尹五榮의 ‘방망이 깎던 노인’[/quote:2nba7uva]

오늘도 하루종일 데이터파일을 보며 한숨쉬고 있었는데, 글을 읽고나서 낄낄 웃어봅니다.^^

[quote="ace4ker":vie9wk9r]코딩하던 노인

원작 : 尹五榮의 ‘방망이 깎던 노인’[/quote:vie9wk9r] 교과서에서 읽었던 것을 패러디 버전으로 다시 읽게 되는군요.
역시 명작은 세월이 지나도 패러디를 해도 그 가치가 사라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도 예전에 봤던 게 다시 생각나서 덧붙여봅니다. ㅋㅋㅋㅋㅋ

저는 2개 한꺼번에 올릴께요 ㅋㅋㅋ

=====================================================

씨디굽던 노인

벌써 4년 전이다. 내가 갓 게이머가 된지 얼마 안 돼서 용산구에 올라가 살 때다. 용산역에 왔다가는 길에, 게임 시디를 한 장 사기 위해 일단 전차를 내려야 했다.

용산역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게임 시디를 구워서 파는 노인이 있었다.

게임을 한 장 사 가지고 가려고 구워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를 것 같았다.

"얼마 알아보고 왔소?"
"한 장에 5천원 아닙니까?"
"한 장에 만2천원이오"
"좀 싸게 해줄 수 없습니까? 다른 곳은 5천원이던데…" 했더니,
"시디 한 장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x가지 없는 노인이었다.

더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구워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이미지를 뜨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뜨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클릭하고 저리 클릭하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다이렉트로 구우면 다 될 건데, 자꾸만 이미지만 뜨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구워달라고 해도 통 못들은 척 대꾸가 없다. 사실 TV에서 "카드 앵벌이 싸구려"를 방영할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었다.

"이미지 안 뜨고 CD to CD로 구워줘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구울 만큼 구워야 시디가 돌아가지, 공시디에 라이터 지진다고 돌아가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굽는다는 말이오? 노인장, 용팔이시구먼, 카드 앵벌이 한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 사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방영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구워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인식이 안되고 뻑이 난다니까. 시디란 제대로 구워야지, 굽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이미지 뜬 것을 숫제 1배속으로 걸고 태연스럽게 새턴을 켜고 야구권을 하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흥분해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시디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게임 시디다.

방영 시간을 놓치고 녹화본을 봐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용팔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용산역을 바라보고 섰다. 그 때, 그 바라보고 섰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용팔이다워 보이고,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용팔이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집에 와서 시디를 내놨더니, 아내는 이쁘게 구웠다고 야단이다. 통신 판매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니, 싸구려 벌크 시디로 구우면 얼마 못 가서 시디가 인식이 잘 안되다가 데이터가 쉬이 날아가며, 무리하게 고배속으로 구우면 다운이 잘 되고 동영상이 끊기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복사 시디는 고급 화이트 골드 시디에 스카시 방식 레코더를 사용해 저배속으로 구워 좀체로 뻑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시디는 한번 동영상이 끊기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복사 시디를 구울 때 이미지를 미리 뜬 뒤에 이미지가 제대로 떠졌는지 가상 시디 이미지로 잡고 에뮬레이터로 확인을 한 뒤에 비로소 굽는다. 물론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IDE 방식의 레코더로 CD to CD로 직접 굽는다. 금방 굽는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것을 몇 시간씩 걸려 가며 이미지 뜰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중고 게임기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중고 플스를 사면 보통 것은 얼마, 재생 렌즈는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정품 렌즈는 세 배 이상 비싸다. 정품 렌즈란 다른 중고 플스에서 떼어낸 수명이 다 된 렌즈가 아닌 신품 렌즈인 것이다. 눈으로 봐서는 신품인지 가변 저항을 조절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단지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용팔이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정품 렌즈를 달 이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시디를 굽는 그 순간만은 오직 잘 돌아가는 시디를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불법 복사 시디를 만들어 냈다.

이 시디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게이머에게 용팔이 소리를 듣는 세상에서, 어떻게 잘 돌아가는 복사 시디가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오이 3개에 오렌지맛 쿠우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단속이 떠서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용산역을 바라다보았다. 푸른 창공에 무너질 듯한 용산역 밑으로 용산견이 잠을 자고 있었다. 아, 그때 그 노인이 저 용산견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시디를 굽다가 우연히 용산역의 마스코트인 용산견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그랫쿠나 무서운 쿠믈 쿠엇쿠나!" 초난강의 시구가 새어 나왔다.

오늘, 집에 들어갔더니 며느리가 DVD 레코더로 플스 2 DVD를 굽고 있었다. 전에 플스 1 시디를 4배속 레코더로 굽던 생각이 난다.

플스 1 복사 시디 구경한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플스 1 복사 시디 판다는 스팸 메일도 날라 오지 않는다. "파이날 환타지 쎄븐"이니, "도끼매끼 메모리알"이니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4년 전 시디 굽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

야동 굽던 노인

벌써 5년 전이다. 내가 야동에 눈을뜨고 이것저것 열심히 구해 보던 때다.
야동을 사러 모처럼 용산 상가에 왔는데 그다지 마음에 드는 매물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나온 김에 영화CD나 사 갈까 생각하던 차에 마침 복도 한구석에 씨디를 굽는 노인이 보였다.

노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야동 하나를 구워 달라고 부탁을 했다.

"얼마까지 알아보고 왔소?"

"최신S1레이블 작품 두개에 노모작품 한개 끼워서 1만원까지 알아봤소"

"S1 작품 한개에 5만원"

좀 싸게 해 줄수 없냐고 물었더니,
"아니 야동씨디 하나 가지고 어디 에누리를 하겠소? 정 비싸거든 파일구리로 가시오"
듣자하니 화가 났지만 파일구리는 검색어 제한과 훼이크파일이 썩 마음에 들지 않던터라, 납득하기로 하고 야동 이나 잘 구워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시디를 굽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하는 것 같더니, 날이 저물도록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고 다 구워지지도 않았는데 꺼내어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냥 늦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가만히 놔두기만 하면 되는건데, 자꾸만 굽는 도중에 꺼내어보고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넘겨달라고 해도 통 못들은 척 대꾸가 없다. 인제 그 정도면 컴퓨터든 PMP든 핸드폰에서든 다 돌릴수 있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못 들은 척이다. 갑갑하고 지루해서 끊었던 담배를 다시 찾게 될 지경이다.

"재생 안해봐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내며,
"CD표면이 말끔해야 천년 만년, 대대손손 돌려보지! 클릭 몇번만으로 좋은 야동시디가 만들어지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살펴본단 말이오? 노인장, CD값 받아먹으려는구먼. 안 속는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데 가 사우. 난 안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껏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이미 흥분할대로 흥분해버린 똘똘이를 보며 될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 맘대로 구우세요"

"글쎄, 재촉을 하면 CD표면에 스크래치가 나고 CD인식오류가 난다니까. 야동CD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만들다 놓으면 쓰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굽던 CD를 숫제 무릎에다 올려놓고 태연스레 사포로 시디 주변을 갈아내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 노인은 또 CD를 굽기 시작한다. 저러다가 CD가 모래가 되버리겠다. 또 얼마 후에 CD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 됐다고 던져준다. 사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되있던 야동CD다.

지하철 막차를 타야겠다고 생각하며 값을 치르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가지고 장사가 개판일 수 밖에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가지고 꼴에 폼을 잡는다.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 수록 짜증이 났다.

상가건물을 나오면서 뒤를 돌아보니, 노인은 기지개를 펴면서 수북히 쌓인 정품 야동씨디들 사이에 앉아 똘똘이를 긁적거린다. 그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홀아비같아 보이고 쭈글한 눈매와 콧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것이다.

다음날 학교 동아리방에 오자마자 시디를 넣고 플레이를 해보았는데 같이 보는 후배들이 좋은 조임이라고 야단이다. 물어보니 소리와 영상의 감도가 환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른 야동이나 별반 다른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후배들의 설명을 들어보니, 싸구려 씨디로 만든 야동은 얼마 안가 소리가 튀고 영상의 질이 떨어진다는것이다. 또 씨디의 표면이 매끄럽지못하면 씨디인식이 불안정해져 소리와 영상의 씽크가 맞지 않는다란 것이다. 요렇게 소리와 영상이 좋고 떡감이 좋은 야동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단 것이었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좋은 야동CD는 고급 공CD에 일일히 수작업 레코딩을 했기 때문에 좀처럼 고장나지 않고 튼튼하다. 그러나 요새 CD는 일이년만 굴리면 인식조차 되지않는다.

예전의 야동CD는 책상에서 자유낙하 시켜도 부숴지지않는다. 물론 비용이 든다. 그러나 요새는 그냥 싸구려 CD다. 금방 만든다. 그러나 견고하지 못하다.

CD회사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CD회사 하나를 선택하더라도 레코딩 성공률등을 먼저 테스트해 구별했고, 정품 공CD는 세배 이상 비싸다. 정품이란 대만이나 중국에서 만든 짝퉁이 아닌 진짜 오리지널을 말하는 것이다. 눈으로 봐서는 몰래 상표를 도용한 짝퉁인지 아닌지 구별하기 쉽지 않다.

단지 신용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중국산 짝퉁 공CD가 하도 많아 그런것조차 따지지 않는 상인들이 늘었다.

옛날 야동팔이 상인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야동을 굽고 야동을 구울때 만큼은 오직 잘 구워지는 공CD에 굽는다는 그 사실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그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모두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야동씨디를 만들었다.

이 야동CD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것 같은 죄책감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딸잡이 에게서 멸시를 받는 세상에서 어찌 명품 야동CD가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었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야동 메이크필름과 그동안 모은 서양물이라도 보여 드려야겠다 생각하며 진심으로 사과하려 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용산을 다시 발걸음을 하여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노인이 있던 자리는 강제 재계발되어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용역 깡패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허무했다.

오늘 동아리방에 들어갔더니 친구 한놈이 손을 바지속에 넣은채 허둥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문득 5년전, 야동씨디를 만들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